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전 기사단 (문단 편집) === 몰락 이후 === 최후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던 마지막 기사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가 결국 사형이 확정되자 '''"프랑스 왕과 교황이 1년 안에 주님 면전으로 끌려나와 자기 앞에서 죄를 고백하게 될 것이다!"''', 즉, 왕과 교황이 1년 안에 죽을 거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 모두 1년도 안 되어서 죽었다. 이외에도 자크 드 몰레가 필리프 4세의 세 아들들(루이, 필리프, 샤를)에게도 저주를 퍼부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것에 대한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성전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가 내린 저주 에피소드는 실제로 존재했던 에피소드 + 후대의 구전 창작으로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에게 행해졌던 부정행위에 맞서, 한때는 위대했던 이 영웅들의 혐의를 풀어주는 것 같은 전설들이 존재하는데, 무죄를 주장하여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한 무리의 성전기사들이 당시 성전기사단의 유죄를 적극 주장했던 법률가 [[https://en.wikipedia.org/wiki/Guillaume_de_Nogaret|기욤 드 노가레]](Guillaume de Nogaret)[* 1260~1313. 프랑스의 법률가·정치가. 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법률을 가르치다, 국왕 필리프 4세의 측근이 되어 그의 왕권강화를 위하여 힘썼다.]를 보고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를 퍼부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8일후에 노가레가 죽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자크 드 몰레는 화염에 휩싸이면서 만일 성전기사단이 결백하다면 교황은 40일 만에, 왕은 일년안에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를 이행하기 위해 하느님의 법정으로 불려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거의 저주와 같은 말이긴 하지만.] 아마 이 내용이 후대에 조금 더 살이 붙어서 오늘 날 전해지는 화형의 저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일이 있은 후, 정확하게 꼭두각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는 33일만에, 필리프는 8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필리프 사후, 그의 세 아들들이 모두 왕좌에 올랐는데, 필리프 사망 약 14년 만에 이 세 아들들마저 모두 사망해, 카페 왕조 직계 혈통의 3백년 역사와 그에 걸친 통치가 막을 내렸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으며, '그가 처형(그러니까 화형) 중에서 두려워 하는 내색 없이, 하느님께서 복수를 해주실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목격이 존재한다.(An eyewitness to the execution stated that Molay had shown no sign of fear and had told those present that God would avenge their deaths)'[* 영문 위키피디아 Jacques de Molay 문서, Legends(전설) 문단의 하위문단인 Curse(저주) 문단, 23:33, 13 September 2020 버전.]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필리프 4세의 세 아들들의 자손들은 모두 요절하거나 대가 끊겨 결국 모두 '''멸족했다.'''[* 다만 차녀 이사벨라는 영국의 [[에드워드 2세]]에게 시집을 가서 2남 2녀를 낳았다. 이사벨라는 무시무시한 여걸로서, 무능한 남편 에드워드 2세를 유폐하고 죽였는데 일설에는 때려죽였다고도 한다. 자세한 것은 [[브레이브 하트]] 문서 참조. 그녀의 장남 [[에드워드 3세]]는 에드워드 2세의 뒤를 이었으며 [[백년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필리프 4세가 죽고 세 아들들과 손자가 차례차례 뒤를 이었는데 모두 아들 없이 죽어 카페 왕조가 무너지고 만다. * 장남 [[루이 10세]](완고왕): 필리프 4세의 뒤를 이었으며 아들 [[장 1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딸 잔이 있었으나, [[살리카법]] 확대 해석으로 즉위하지 못했다. 하지만 잔은 오래 살았고 [[나바라 왕국]]의 여왕으로 즉위하여 후손을 남겼다. * 차남 [[필리프 5세]](장신왕): 조카 장 1세의 뒤를 이었으나, 외아들 필리프가 1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만 딸 네 명은 모두 오래 살아서 시집을 갔고 그 중 이사벨은 후손도 남겼다. * 삼남 [[샤를 4세]](미남왕): 형 필리프 5세의 뒤를 이었으나, 외아들 샤를이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마차 사고가 나서 급히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시켰는데 어머니 마리아, 샤를 모두 사망했다.] 딸 3명도 모두 요절하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 손자 [[장 1세]](유복자왕): 루이 10세의 유복자로 아버지 루이 10세가 죽기 전에 이미 뱃속에서 왕위 계승자로 결정났었다. 따라서 태어나자마자 왕에 즉위했지만 갓난아기가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삼촌]] 필리프(필리프 5세)가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생후 5일'''만에 사망했다.[* '섭정을 맡은 필리프 5세가 손을 썼다 [[카더라]]'라는 설이 있으며 심지어 형 루이 10세가 요절한 것도 필리프 5세의 짓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정황이나 심증만 약간 있으며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만약 정말 필리프 5세가 관여한 것이라면 '''프랑스의 [[수양대군]]'''이 되는 셈이다.] 마지막 왕이었던 샤를 4세마저 죽자 필리프 4세의 혈족 중에서 3명이 왕위 계승을 주장했다. * 필리프 드 발루아: 필리프 4세의 동생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이자 필리프 4세의 조카. *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 필리프 4세의 차녀이자 샤를 4세의 누나 이자벨의 아들로 필리프 4세의 외손자. * 나바라 왕 펠리페 3세: 필리프 4세의 동생 루이 데브뢰의 아들로 필리프 4세의 조카인 동시에 루이 10세의 사위.[* 루이 10세의 외동딸 잔과 결혼했다.] 필리프 4세의 조카인 동시에 손녀 사위가 된다. 결국 필리프 드 발루아가 왕위 계승을 해서 [[필리프 6세]]가 되어 [[발루아 왕조]]를 세웠으나, 이 문제는 에드워드 3세의 반발을 사서 [[백년전쟁]]의 단초가 된다. 이렇다 보니 [[프랑스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가 몰락한 것이 성전기사단을 계승한 [[프리메이슨]]의 음모 때문이라는 음모론 떡밥까지도 존재한다. [[루이 16세]]의 목이 떨어질 때 누군가 '''"[[자크 드 몰레]]여, 그대의 [[복수]]가 끝났다!"'''라고 외쳤다는 풍문도 존재하지만 실제여부는 불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